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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 - 전례와 선교 / 주낙현 신부
신장현 2016-07-09 추천 1 댓글 0 조회 2378


세상의 종말 - 전례와 선교


“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의 막바지에 숨을 거두시며 남기신 말씀이다. 다 이루는 일. 이것이 교회가 말하는 종말의 원래 뜻이다.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이 채워지는 하느님의 시간이 종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께서 다 이루신 일의 행적을 되돌아 살피며 다시 기억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오늘과 내일,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를 부족함 없이 완성하시려는 일에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이 기억과 참여의 행동을 시작하고 몸으로 수련한 뒤 세계로 파송 받는 선교 공동체이다. 그러니 교회는 예수께서 이루신 종말을 전례와 선교 안에서 지금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 공동체이다.

종말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가 있다. 그 극단적 사례가 바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짜를 계산하여 그날을 믿고 준비하는 이들이다. 사회에 희망을 둘 수 없고, 교회에서 신뢰를 발견하지 못할 때마다, 그 실망한 이들을 꼬드겨 사익을 챙기는 못된 거짓 혹설이다. 이들은 교회 역사에 되풀이해서 등장했다. 물론 정해진 날짜에 아무런 일이 없어서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여러 교회와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서 이런 불씨가 생겼다. 심판에 대한 공포로 종말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땅을 세속이라 경멸하고 하늘만 거룩한 것이라고 분리해서 가르친 탓이다. 게다가 세상과 사회에 대한 건전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는 사람들의 절망감에 기름을 붓는다. 시한부 종말론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니 그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이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반쯤은 그들과 다름없다.

반면, 전례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교회는 다르다. 우리는 성찬기도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질러 하느님의 시간을 완성하는 구원의 역사를 기억한다.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신앙의 신비” 선포는 이 종말의 뜻을 바르게 세운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하느님은 성육신하시어 우리와 살며 고통당하다 죽으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전례 공동체 안에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우리를 초대하시고, 주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그분의 잔칫상에 먹고 마시도록 한다. 종내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모든 역사는 부족함 없이 거룩하게 완성될 것이다. 이 과정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요, 하느님 시간의 완성이요, 종말이라는 선포이다.

종말은 교리가 아니며, 선포에 머물지도 않는다. 종말은 교회의 경험이다. 예수 안에서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품은 교회가 그 완성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끝까지 걸어가는 순례 경험이다. 이 순례의 핵심은 반복해서 거행하는 성찬례이다.

성찬례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행동이요, 시간이요, 공간이다. 메시아가 베푸는 잔칫상이다. 잔칫상에 와서 우리는 차별 없이, 부족함 없이 와서 함께 부르게 먹으라고 초대를 받았다. 축성된 음식을 먹고 우리 자신이 축성되어 변화하라는 초대요, 경험이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이미 맛보고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긴장감이 신앙인의 겸손함을 이끌고, 아직 부족한 현실을 견디며 변화를 꿈꾸고 희망하도록 돕는다.

성찬례는 미리 맛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우리를 파송한다. 선교는 어떤 지적 교리나 도덕적 규율을 선전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성찬례 안에서 우리가 경험한 삼위일체, 그 춤추는 친교의 삶을 우리 몸으로 이 세상에서 증언하는 일이다.

그러니 전례와 걷는 신앙의 순례 여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종말의 시간이 전례를 통해서 우리 삶에 파고들어온다. 전례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다시 하느님 나라는 전례, 특히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온다. 전례가 끝나고 우리는 이 종말의 하느님 나라를 가지고 세상 속에 나아간다. 성찬례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이다.’


(성공회 신문 2012년 1월 14일치 6면)


사례: 지난 1년 동안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을 사랑하고 격려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많은 분의 관심과 격려로 힘을 얻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좋은 지면을 허락해 주신 성공회 신문사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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