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성전의 두 기둥 - 성무일도와 성찬례
천하장사 삼손은 들릴라의 꼬임에 넘어가 머리칼을 잘리고 눈까지 빼앗긴다. 결국, 그는 불레셋 사람의 신전 잔치에 무기력하게 끌려가 조롱거리가 된다. 눈멀어 절망 속에 있는 삼손은 주위 사람에게 그 신전을 떠받치는 두 기둥 사이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하느님께 마지막으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고는 두 기둥을 밀어 넘어뜨린다. 신전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이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은 교회의 삶에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의 삶이라는 성전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무엇인가?
전례 전통의 교회에서 교회 생활의 두 기둥은 단연 성무일도와 성찬례이다. 이 두 전례 행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 이래 교회 전통 속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가장 깊은 젖줄이었다. 현대 교회의 여러 예배 모양도 바로 이 두 젖줄에서 비롯한다. 건강한 전례 전통 교회를 가꾸려면, 성무일도와 성찬례의 뜻과 실천, 그리고 두 전례의 관계를 잘 살피며 실천해야 한다.
성무일도는 조금 무거운 번역어이다. 성무일도라는 말은 매일 기도가 수도원의 발전에 따라 수도자들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따라 드리는 의무적 기도라는 뜻을 담은 용어이다. 매일 기도는 참여자와 열리는 곳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발전했다. 하나는 일반 교회의 매일 기도요, 다른 하나는 수도원의 매일 기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전통은 대부분 사라지고 수도원 전통만이 살아남았다. 다시 말해 일반 교회에서는 한동안 매일 기도가 사라졌다는 말이다.
성무일도를 다시 교회의 예배 생활에 회복한 사람은 성공회 전례 개혁가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였다. 크랜머는 수도자의 전유물이 된 성무일도를 대폭 개정하여 공동기도서에 실어 모든 신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침의 여러 기도를 종합해서 아침 기도(조도)를, 저녁과 밤의 여러 기도를 엮어서 저녁 기도(만도)를 마련했다. 1930년대 주일 성찬례 회복 운동이 있기 전까지, 아침 기도는 주일 예배를, 저녁기도는 성가대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노래 예배(이븐송)로 자리 잡아 성공회 영성을 키웠다.
번역어와 역사가 어떻든, 성무일도는 세 가지 구성 요소가 뚜렷하다. 즉 말씀 읽기와 찬양, 그리고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교회 전통이 찬양에 좀 더 강조점을 둔 반면, 수도원 전통은 말씀 읽기를 강조하곤 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가 그것이다. 세상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늘 성무일도의 핵심을 이뤘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늘 세상과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를 기뻐하며, 그 부활 사건을 통해서 이루신 구원에 감사하는 공동체 예배이기 때문이다. 성무일도는 성찬례를 준비하고, 성찬례를 다시 일상의 삶으로 확장한다. 성찬례를 둘러싼 준비와 확장이 바로 성무일도의 위치요, 역할이다. 성찬례가 성무일도의 중요한 세 요소 - 독서, 찬양, 기도 - 를 포함하면서(말씀의 전례) 성찬기도와 영성체로 구성된 것(성찬의 전례)은, 주일 성찬례를 통해서 매일의 기도 생활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성찬례 막바지에 세상 속으로 파송 받은 우리는 매일 기도 생활과 더불어 선교 사명을 실천한다.
매일의 성무일도와 주일의 성찬례는 우리 삶을 새로운 시간으로 나눠 주기적으로 기도하게 한다. 그런 탓에 성무일도를 ‘시간 전례’라고도 부른다. 주간의 매일과 주일을 관통하는 주기적인 리듬감이 우리 기도 생활을 이룰 때, 우리는 몸에 밴 전례 생활을 할 수 있다. 일찍이 사제요 시인이었던 조오지 허버트는 이렇게 노래했다(1663년).
“그저 하루만이 아니라, 칠일 동안 내내 / 내가 주님을 찬양하리니 / 내 비록 하늘에 있지 않더라도, 마음을 들어 / 주님께 올리리라.”
허버트 신부는 성공회 영성이 매일의 찬양, 말씀 읽기와 기도, 그리고 주일의 성찬례에 뿌리 내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와 더불어 교회력이 비추는 구원의 역사라는 새로운 시간에 우리 몸과 마음을 맡기는 일이 우리를 봉헌하는 삶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시간의 리듬에 맞춘 전례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빚어낸다.
한편, 언젠가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주중의 성무일도가 사라지고 매일 성찬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매일 성찬례가 굳이 성공회의 오랜 전통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이미 널리 퍼져 신앙생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좋은 일이다. 다만, 이로써 교회 전례 전통의 다른 한 기둥인 성무일도가 퇴색한다면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 곳곳에서 주일 성찬례의 회복과 더불어, 성무일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새롭게 일어나는 흐름을 보노라니 더욱 그렇다.
성공회 신앙 전통의 두 기둥이 튼튼하게 서서 우리 교회의 전례와 신앙을 올곧게 떠받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성공회 신문 2011년 12월 10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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