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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라” - 전례의 기억과 시간 / 주낙현 신부
신장현 2016-07-09 추천 0 댓글 0 조회 440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나를 기억하라” - 전례의 기억과 시간


“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라.”

그리스도교는 기억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교회 역사 속에서 계속 펼쳐지는 신앙인들의 삶과 증언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종내에 완성되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한다. 이 역사의 기억을 망각하고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 전례와 전례력은 이 기억을 우리 온몸으로 보존하고 축하하며 우리 일상 생활에서 훈련하는 장치이다.

전례를 통한 기억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억이다. 교회는 이 전례적 기억을 성서 희랍어를 따라 ‘아남네시스’라 부른다. 성찬기도는 이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성찬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 기도인데, 이 감사는 기억에서 나온다. 하느님께서 과거에 베푸셨고, 현재도 베푸시고, 미래에도 베푸실 사랑과 은총의 구원 행동에 대한 기억이다. 성찬기도는 그 기억의 세 차원을 이렇게 아우른다.

과거 기억: 이 기억의 핵심은 하느님의 창조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보시기에 참 좋은 것’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고 하느님과 이웃에게 죄를 범했다.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셨지만, 인간은 배신을 계속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몸소 인간이 되시어, 우리가 사는 사회, 정치, 경제 환경 속에서 함께 사셨다. 그러나 그 삶의 방식때문에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억압을 당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는 이 고난의 상황과 죽음의 사건을 기억한다.

현재 기억: 예수의 부활은 죽음을 되풀이하는 과거의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시간을 여는 사건이다. 신앙인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부활을 ‘지금 여기서’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 부활 이후, 역사는 부활의 현재형이다. 부활은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보여주셨던 사목과 선교, 그의 자기 포기와 희생은 이제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의 생명과 몸을 이룬다. 그 부활을 사는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미래 기억: 우리 신앙에서 기다림과 기억은 같은 말이다. 성찬기도는 일치와 정의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찬 시간의 완성을 기억한다.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채우는 사건이다. 먼저 떠나간 이들과 지금 살아가는 우리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다. 세상이 만든 분열과 분리의 벽을 무너뜨리고, 다같이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시간이 바로 종말이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성찬기도의 마지막 영광송은 우리 삶을 그 삼위일체의 사랑과 친교처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시간은 기억의 적이다. 시간은 망각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그 망각에 기대어 잘못을 숨기기도 한다. 시간의 망각을 막으려는 기억 장치가 바로 전례력(교회력)이다. 망각하는 세상의 시간을 잊을 수 없는 거룩한 시간으로 재배치한 새로운 달력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삶의 행적에 우리 자신의 삶을 얹혀 놓는다.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그분이 가신 길과 세월을 그대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례력에 따라 전례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기억은 두뇌의 작동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몸과 일상 생활을 수련하도록 이끈다. 계획이 잘 짜여진 운동으로 ‘몸짱’을 만들 듯이, 전례력에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만들기’를 한다. 이런 뜻을 깊이 헤아리지 않으면 전례력과 전례는 거추장스러운 전통의 찌꺼기가 되고 만다. 이런저런 체력단련 도구를 사다가만 놓고, 그 작동법도 모르고 계획대로 실제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 도구만 나무라는 꼴이다.

이 모든 기억은 우리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으셨으니, 그 길을 기억하고 따르는 일은 위험할 수 밖에 없다. 하느님의 정의로운 창조 세계를 회복하시려고 스스로 한없이 낮추신 그리스도의 포기와 희생, 고난과 죽음을 누군가 선포하면, 우리가 바라는 편안한 삶을 위협하는 소리로 듣기도 한다.

이 모든 기억은 다른 어떤 이들에게도 위험한 말로 들린다. 그 기억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다가 스러져간 한 청년의 삶을 되새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일을 덮고 싶은 가해자들에게는 그 사건을 기억에 되살리는 일은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그 가해자들은 종종 그 기억의 장치를 고장내고는 쓸모없다고 단언한다.

예수님에 대한 기억은 ‘위험한 기억’이다.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복음의 가치에 따라 우리 자신에게 도전하고,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장치와 궤도인 전례와 전례력 안에서, 우리는 이 위험한 도전에 몸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온몸을 통해서 기억한다는 것은 그 위험을 온몸으로 산다는 것이다.

“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라.”


(성공회 신문 10월 22일,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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